오영석 지음: 어떻게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키웠는가

어떻게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키웠는가

한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두 남매는 프랑스 정계의 최고 엘리트로 활약하고 있다. 교학도서가 출판한 <어떻게 자녀를 인재로 키웠는가>는 두 남매를 키운 오영석 박사의 자녀교육 철학과 살아온 이야기에 대한 기록이다. 한불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은 문화와 언어 경계에서 시소를 타듯이 어려움이 있지만 이 어려움을 이겨낸다면 언어적 감각은 더 뛰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이해력 및 깊이가 더 클 수 있다. 이는 글로벌 인재를 만드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요소이다. 오영석박사가 지은 자녀 키우는 노하우를 만날 수 있는 신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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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녀 프랑스 마크롱 정부서 핵심으로 활약…아들은 장관, 딸은 하원의원

문재인대통령부부와 세드릭, 델핀 오

2018년 10월 15일 프랑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 마련된 엘리제궁 국빈만찬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직접 소개한 두 남매가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디지털 경제 보좌관)인 ‘세드리크 오’와 프랑스 하원 의원 ‘델핀 오’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들 남매와 문 대통령 내외의 기념사진까지 직접 찍어 줬다.

이들 남매 국적은 프랑스지만, 아버지 오영석 박사는 격년으로 한국을 방문해 언어와 문화를 익힐 수 있게 교육했다. 남매는 아버지의 가르침 덕에 프랑스 마크롱 내각의 대표적 친한파이자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세드리크는 지난 3월 31일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디지털경제 장관으로 임명됐고, 델핀은 프랑스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 6월 1일 프랑스 외무부 본부대사로 임명돼 ‘UN 여성 포럼 2020(The UN Women Global Forum 2020)’ 사무총장을 맡았다.

오영석 박사는 저서 <어떻게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키웠는가>에서 자녀 교육 철학과 방법론을 소개했다. 그는 자녀들이 성공한 요인으로 독서와 대화를 꼽았다. 어린 자녀들과 책을 함께 읽은 후 토론했고, 저녁이면 식탁에 둘러앉아 낮에 겪은 일과 관심사를 서로 나누는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교학도서> 본문에는 ▲매일 가족 모두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TV를 없앤다 ▲아이들에게 하루 8시간의 숙면을 취하도록 보살핀다 ▲아이들과 놀아 주는 시간을 갖고 대화한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한다 등 저자 오영석 박사의 교육 방법이 구체적으로 소개돼 있다. 모든 교육은 대학입시로 통하는 대한민국 학부모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오영석 저, 어떻게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키웠는가?

다음은 중앙일보 [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23) 오영석 전 카이스트 초빙교수] “자식 진로 개입은 자식과의 동반자살” 인터뷰에서 발언록을 가져왔다. 

“부모가 자식의 전공·진로 결정에 개입하는 건 자식과 함께 동반자살하려는 거와 같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의 장래를 책임집니까? 그랬다가 잘못되면 ‘얘야, 미안하다, 한번뿐인 너의 인생을 내가 망치고 말았구나’ 할 건가요?” 오영석 박사(전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라며 “부모로서 책임질 건 자식의 장래가 아니라 부모 슬하에 있는 동안의 건강과 삶의 질”이라고 말했다. “자기 길을 자식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실패를 겪으면서 성숙해 지죠. 자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 자기 손등으로 닦게 해야 합니다. 어쩌면 문제 없이 성장하는 젊은이가 오히려 불안한지도 몰라요.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통제하기보다 친구가 돼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모범을 보이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망 내지는 조언해 주는 것까지만 해야 합니다. 경험이란 망루와 같습니다. 많이 쌓일수록 망루가 높아져 앞을 멀리 내다볼 수 있죠. 멀리 내다봐야 판단의 근거가 많아져 큰 오류 없이 미래를 제대로 대비할 수 있어요.”

“인생이라는 여행길은 출구가 여럿인 넓은 방을 둘러보는 것과 같아요. 어느 시기에 어느 문을 여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죠. 중요한 건 그 문을 제 손으로 열어야 한다는 겁니다. 남이 열어주는 문은 관 뚜껑밖에 없어요.”

“저는 객관식 시험이야말로 출제자의 주관에 좌우된다고 봅니다. 출제자보다 생각이 많거나 출제자의 생각에 못 미치면 틀리게 돼 있죠. 프랑스의 수능시험은 논술형으로 과목당 4시간씩 보는데 1만 명의 교사가 매달려 채점을 하는 데도 편차가 크지 않습니다. 어휘력, 주제와의 연관성, 표현력 등의 평가 지표에 따라 채점을 하기 때문이죠. 우리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권력은 권력 자체보다 인간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될 때 더 매력적인 힘입니다. 권력은 너무 집중되면 중앙은 경색되고 변방은 마비가 오죠.”

“통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한편 ‘왜 안 되느냐(Why not?)’는 질문을 수시로 하도록 가르쳤습니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고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아들과는 어떤 의미에서는 경쟁 관계입니다. 체벌을 할 땐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고, 좋지 않은 기억으로 마음에 남지 않도록 보듬었습니다. 어떤 땐 세드리크가 순종하기보다 자신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체벌에 항거하기를 바랐죠. 체벌도 하나의 교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영석 박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1973년 국방과학연구소에 들어간다. 프랑스로 미사일 기술을 배우러 가기 위해 프랑스문화원에서 불어를 배우다 프랑스 여선생님과 사랑에 빠졌다. 이후 이직과 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던 중 1980년 그 여선생님과 결혼해 아들 세드리크와 딸 델핀을 낳았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교육 공로 훈장’을 받고, 한국에선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공로로 ‘국민 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오영석 박사는 프랑스 국영화학회사 롱프랑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을 거쳐 국립응용과학원 교수로 재직하는 등 프랑스에서 머문 25년 동안 재불 한국 과학기술자협회 회장과 재유럽 한국 과학기술자연합회 회장을 지냈고, 프랑스에 유학 온 한국인 학생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 2004년 KAIST 초빙교수로 한국에 돌아온 그는 현재 예성화랑 고문과 개발도상국의 컴퓨터 공학발전을 돕는 사단법인 ‘엑세스넷’ 회장을 맡고 있다.

1980년 오 박사가 한복을 입은 부인과 프랑스 리옹 시청에서 혼인신고서에 서명하고 있다. / 사진:오영석

프랑스 의회에서 대정부 질문 답변을 마친 오 박사의 아들 세드리크 장관(오른쪽)과 동생인 델핀 대사. / 사진:오영석

오영석 박사가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인사동 예성화랑에서 포즈를 취했다. / 사진:전민규 기자

한불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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