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섬나-Yoo Somena : 세월호 주인 유병언의 장녀 유섬나와 파리법정에서 첫 대면

 세월호 주인 유병언의 장녀 유섬나와 파리법정에서첫 대면을 마치고…

6월 11일 (현지시간) “세월호 주인” 유병언씨 장녀인 48살 유섬나씨가 지난 5월 27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체포되어 구치소에 구금된 지 보름이 지났다. 그녀는 파리법원에 다시 보석신청을 했다. 오늘이 그 판결이 있는 날이다. 그녀가 낸 보석심사를 보기 위해 오후 2시 파리 시테-Cité 섬에 있는 항소법원 법정으로 나섰다.

40년째 파리에 살고 있는 필자는 이런 역사적 현장을 참관하고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법원으로 이동 중에 파리 어느 모임에서 프랑스 회원들과 함께 파리 대법원과 구치소를 얼마 전에 방문한 그때가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때 방문했던 구치소에 바로 유섬나씨가 감금되어 있다. 그곳이 마치 천둥, 번개처럼 머리를 때리듯이 그 때와 유씨가 그곳에 있다고 생각이 겹치면서 섬찟했다. 몸서리치는 닭살이 올라왔다.

파리 법원 구치소 입구

파리 법원 구치소 입구

그곳은 마치 새장 철창처럼 빈틈없이 쇠창살이 들어서 있다. 세상과 완벽하게 분리된 곳 이었다. 자신이 열 수 없는 문들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인생의 바닥을 보았다. 열쇠가 없는 문으로 외부와 완전 차단이 된 구치소, 유씨는 느닷없이 어느날 아침에 매달 7000유로 한국 돈으로 1천만원의 월세를 지불하며 살던 자신의 파리고급아파트에서 체포되어 덮을 이불도 주지 않는 구치소 생활하는 모습이 그려지자 허무감이 차디 찬 바닷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또 다른 기억이 지금 타고 가는 버스광고와 겹쳐졌다. 2012-13년 파리 시내버스에 전시광고와 길거리 광고판에도, 파리 지하철 삼성전광판에서도 아해 사진 전시회 사계절 사진 광고가 움직이고 있었다. 눈 앞에 셀 수 없는 광고가 파리전체에 펼쳐지고 있었다.

루브르 튈러기 아해 사진전 포스터 2012년

루브르 튈러기 아해 사진전 포스터 2012년

한국 사진작가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광고된 적이 없어서 의아했고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해서 루브르 박물관 앞 튈르리 공원에 통나무 가건물로 지은 대규모 전시장을 찾아갔다. 게다가 뜻밖의 무료 입장이었다. 프랑스 경제가 좋지 않은데 한국 사진작가를 그처럼 화려하게 소개하는 것이 처음이라 한국인으로써 좋기도 했지만 이내 놀랍고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작년 2013년 6월부터 9월까지 베르사이유 궁이 평소에 개방하지 않은 호화스러운 장소인 오랑주리 역사적인 건물에서 아해 사진작품이 대규모 전시가 있어 비 오는 주말에 전시장을 다녀온 기억도 떠 올랐다. 도대체 아해라는 실체가 누구인지 베일에 가려져 알 수가 없었다. 전시장 안내자에게 물었으나 자기도 모른다고 한다.

2013년 베르사이유 궁 오랑주리 AHEA 전시장

2013년 베르사이유 궁 오랑주리 AHEA 전시장

작품전시 도록에 있는 미술관 관장들이 칭송하는 찬사의 글을 읽고 아티스트 아해 사진전을 보면서 남편이 이제까지 취미로 찍어 온 사진을 전시해도 된다고 유머 섞인 이야기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던 적이 있었다.

지난 4월 16일은 한국 출장 중이었다. 하루 일정에 따라 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 모니터에서 세월호 침몰 뉴스를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전원구조라고 안심을 했고 점점 사태가 심각해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 배 안에 300명이 넘는 어린 수학여행 학생들이 잠겨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파리로 돌아온 이후에도 연일 인터넷으로 소식을 접하면서 가슴이 숯 덩어리처럼 시커멓게 변해갔다. 때론 머리 속이 멍해져 버릴 때도 있었다. 그때 마다 사고로 인해 꽃다운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간 언니의 모습이 떠올라 세월호 가족을 보면서 평생에 원한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고의 상처가 그 서러움이 환갑이 지난 오늘까지 각인이 되었기에 그 희생자들과 가족들이 바로 내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함께 살던 가족과 친지를 갑작스런 사고로 죽음에 아무런 준비없이 영원한 이별을 한 그 충격은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기는커녕 아무 때나 불쑥 되살아나곤 했다. 트라우마 치료를 전혀 받지 않고 살아 온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그들이 내가 되었고 내가 그들이 되어 다시 휘청대고 있었다. 사고를 접하고 난후, 하루가 지나갈 때 마다 언니의 모습과 함께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지금 글을 쓰는 이순간도 슬픔이 복받쳐 앞이 흐려지고 있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그럴수록 글을 써야겠다는 각오로 몸을 추슬렀다. 

물의 극장-Theatre d’Eau

물의 극장-Theatre d’Eau

세월호 침몰 사건이 나서야 언론을 통해서 그 선박주인 유병언씨가 ‘아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6월 10자 르몽드 신문에 따르면 유병언은 2012년 루브르 박물관에 110만 유로 (15억 원)을 기부했고 베르사이유 궁에도 500만 유로 (65억 원)을 기증했다. 베르사이유 궁은 이 밖에도 궁 정원에 있는 멋진 분수대가 있는 물의 극장 (Theatre d’Eau) 보수공사 후원으로 유씨 가족으로부터 수백만 유로의 후원금을 받았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파리 북쪽 지방 재정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콩피에뉴(Compiègne) 고성이 있는 숲 페스티벌도 유병언의 후원을 받았다. 르몽드는 유럽 재정위기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지원이 줄어든 박물관을 유병언이 많은 돈으로 공약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그의 작품이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었고 명성을 얻게 된 비결을 분석했다.

루브르푸르뚜스(louvrepourtous) 블로그 운영자 베르나르 아쉬께노프에 따르면 파리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진 고성으로 유명한 콩피에뉴 페스티벌에서 유병언 전시 및 공연 일정은 그 지역 임페리얼 극장에서 강행될 예정이며 파리 시내에 있는 씨데드라뮤직 (Cite de la Musique) 에서 전시일정은 취소되었다고 한다. 

유씨는 2012년 프랑스 중부지방에 위치한 3만3천평 쿠르베피(Courbefy) 마을 전체를 52만 유로 (8억원)에 낙찰 받았다. 프랑스에서 마을전체가 경매로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르몽드 신문은 세월호 재판 결과에 따라 유병언으로 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은 프랑스 유력 박물관에도 책임론이 제기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이런 사실을 예사로이 보고 넘기지 않을 것이다.

파리 법정-Palais de justice Paris

파리 법정-Palais de justice Paris

파리법정에 들어섰다. 국내 방송국 및 국제적 통신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청석에서 기다리면서 유씨 가족은 무엇 때문에 무슨 목적으로 프랑스 박물관들에게 거액을 기부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왜 어떻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세계적으로 복지제도가 잘 되어있는 프랑스에 그 많은 돈을 갖다바친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를 위한 일인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또 프랑스는 비극의 분단국가 무명사진작가 한국인이 거액을 기부 했을 때 그 사람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 사이비종교 교주라는 것을 몰랐을까? 구원파 교주이며 오대양사건 (단체자살)과 연관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모르고 있었던가?

한 때, 한국 젊은 유학생들이 파리에서 자취 방을 구할 때 한국 문선명 교회가 사이비 종교라면서 한국인을 모두 사이비 종교 신도로 매도하여 한국 학생들에게 임대를 거절할 때가 있었다. 한국인을 문선명 사이비신도로 위협 하기도 했다. 그런데 파리 박물관들은 유병언이 사이비종교 교주인 것을 알고도 묵인했는지 아니면 사진 아티스트로 간주했는지 묻고 싶다.

images (8)유병언씨가 프랑스 박물관에 기증한 돈에는 구원파 신도들이 바친 돈도 있었을까? 샹제리제 등 관광지에서 소매치기를 시키는 두목들이 있다. 어린애들과 아녀자들이 관광객 상대로 무차별 소매치기한다. 인터넷시대에 파리를 방문한 외국관광객들 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앵벌이를 시킨 그 두목들이 유씨 일가라고 생각이 든다면 무리한 비교일까? 큰 두목이 있고 작은 두목들은 신을 빙자한 설교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에 따라 바쳐진 성금으로 프랑스 박물관에 다시 바친 게 아닌가?

세습된 한국교회들 모습을 생각하며 파리 법원 안에 있는 작은 성당이 떠 올라 300명의 어리고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기억하며 명복을 빌었다.

파리법원 내 작은 성당

파리법원 내 작은 성당

 

마침내 유섬나씨가 법정에 들어섰다.

판사와 그 옆으로 4명 제일 끝에 앉은 한 명은 한국정부를 대표하는 프랑스 변호사 모두 5명이 검사석에 자리 잡았다. 방청석에는 30명 정도가 앉아있었다. 내 옆자리에 안면 장애자인 화가는 섬나씨 모습을 수채화로 열심히 빠르게 옮기고 있었다. 사진촬영을 금지했지만 연필과 붓으로 피고인의 모습을 그림으로는 가능하다.

두꺼운 검은 테 안경을 쓰고 검고 길게 내린 생머리의 섬나씨는 남색의 잠바를 입었다. 짙고 굵은 검은 테 안경을 썼다. 판사의 최종결정을 기다리며 잠깐 쉬는 시간에는 굵은 검은 테 안경을 벗은 채로 있었다. 그 때 방청석과 반대방향으로 자세를 잡은 그녀의 맨 얼굴인 옆모습이나 조금 보았다.

AvocateGeneralePresidenteFilippiniCroquis201311검사는 ‘모래알디자인’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유섬나씨가 부친 유병언 씨의 해외사진 전시회 진행, 관련 업무를 도맡아 왔고 유씨 일가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섬나씨는 492억원의 횡령, 배임 혐의를 받고 있어 한국과 프랑스 양국 사이의 조약에 따라 범죄인도 대상이며 계열사인 다판다 회사 측으로부터 컨설팅 비 명목으로 매달 8천만 원씩 모두 48억 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고 발표했다.

파트릭 메종뇌브는 악마변호사라고 자칭하면서 항소법원이 떠나갈 정도로 쩌렁쩌렁한 큰 소리로 “사형, 고문 있는 한국에 넘겨선 안 돼”라며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은 세월호 사건의 희생양을 찾으려는 조치”라고 주장하는 얼굴이 마치 악마처럼 붉그락 푸르락 화난 목소리와 양손과 양팔을 번갈아 치켜올리며 말한다. 유씨는 파리에서 세월호 침몰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거물급 변호사를 선임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아니 진정 유씨가 깨닫게 되길 빌 뿐이었다.

그 유명변호사는 검사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했던 말을 반복하며 변호에 열을 올린다. 유섬나씨는 프랑스 당국에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고 강조한다. 1년 전에 프랑스에 왔으며 투자 비자를 받았고 3년짜리 프랑스 체류증을 소지, 16살 된 아들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똑같은 말을 세번 이상 반복하며 흥분했다.

거물변호사의 언행을 보며 파리 코메디프랑세즈 극장에서 관람한 비극과 희극의 상징인 ‘쟝 라신’과 ‘몰리에르’의 연극 장면이 생각났다. 그는 마치 연극배우 역할 하듯이 과장된 언행과 요란을 떨고 있었다. 변호사보다 연극배우를 해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Hkg9718847_600_sqligallerysliderImage한국 전체를 충격과 비탄에 빠지게 한 비극이 머나먼 이곳 파리 땅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16살된 아들을 둔 엄마로서 유섬나씨는 세월호 속에 갇혀 숨진 희생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16살이면 침몰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나이가 비슷했다. 그래서 일까 그녀 입에서 단 한마디라도 유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아니 간절히 바랬다. 판사가 유씨에게 마지막 할 말이 있느냐라는 제안에서도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죄송하다’는 그 간단한 말은 끝내나오지 않았다.

“남동생 유혁기(42살)씨도 프랑스에 있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보석을 허락하면 유섬나씨가 도주할 우려가 있으며 프랑스에 계속 머물지 알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담당 판사는 유씨가 프랑스 법원에 낸 보석 신청은 거절로 판결이 내려졌다. 

유씨 일가는 자기들만 살아 남겠다고 거물급 변호사를 선임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변호비 지불하기로 합의를 보았는지 궁금해 졌다. 한국과 프랑스 상대가 아니라 유씨 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큰소리로 핏대를 올리면서 열변을 토하는 거물 변호사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이 들었다. 큰소리치는 놈이 이긴다는 옛말이 스치면서 일말의 불안감이 올라왔다.

images법정에서 나오자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둘러 쌓여 있다. 법원 계단을 무겁게 내 디뎠다. 꺼억 꺼억 울면서 울분을 토해 낼 여유도 없이 안산과 팽목항을 왔다 갔다 하면서 희생자로서 자기 주장과 권리를 제대로 한 번 펼쳐 보일 새도 없이 운명타령으로 묻혀가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온다.

내년이 한-불 외교관계 130주년 되는 해이다. 세월호 참사로 프랑스에서 한국 국격이 말이 아니다. 누가 질문하면 너무 창피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주눅이 들고 만다. 해외에 있으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프랑스 철학자 쟝 기통(Jean Guitton)에 대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평생을 통해 던진 화두가 하나 있다. 명석한 분별력(Lucidite et Discernement)이다. 그 명석한 분별력을 준다는 구약의 선악과 효험은 어디에 있는지 하늘을 향해 반문해 본다.

 

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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