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성해방과 유럽평화를 가져온 시몬 베일, 불 대통령 마크롱 팡테옹 안장 선언

프랑스  여성해방과 유럽평화를 가져온 시몬 베일, 불 대통령 마크롱 팡테옹 안장 선언

 

시몬 베일(1927-2017), 한 여성이 보여준 용기는 보이지 않는 프랑스 유리천장을 깨버린 최초 여성이다.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는 임신중절수술이 금지되었다. 시술을 몰래 하다가 걸리면 형사처벌 받았다. 원하지 않았던 임신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자살을 선택했다. 미혼모는 집에서 가출했어야 했으며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혔다. 시몬 베일은 하원에서 임신중절  법을 제출하였고 극우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1974년 11월에 통과되었다. 그녀는 의회에서 이 법안을 제출하면 서 30여분 간 다음과 같이 발언하여 하원에서 박수를 받는다.

Simone Veil

« 여자가 갇는 운명적인 임무에 대해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대부분이 남성으로 구성된 의회 앞에서 이런 법안을 제출하게 되어 미안하다.  어떤 여자도 임신중절을 가벼운 마음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 여자들의 말을 들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그것은 항상 비극적이며,  항상 비극적으로 남는다 .»

임신중절 법안 통과 이 후 2년 후 1976년 11월 26일 시몽 베일은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한다.

« 우리는 매년 증가추세에 있는 300 000명의 임신중절 앞에 놓여져 있는 여성들이 우리 법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고 창피함과 상처 속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어 눈을 감고 있을 수 없다. »

Après l’adoption de la loi légalisant l’avortement, Simone Veil quitte le palais de l’Elysée, le 29 novembre 1974, à l’issue d’un entretien avec Valéry Giscard d’Estaing. (AFP)

극우나 극단 종교주의자들에게 많은 비난은 받았지만 시몽 베일이 독일나치시절에 아우스비치 집단수용소에 살아 나온 유태인 생존자라는 것을 알자 더 이상 시비를 걸지 못했다.

유럽에서 전쟁을 막는 방법은 유럽의회에서 각국의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해야 하다며 시몬 베일은 1979년 최초 유럽의회 의장에 선출된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다. 지금의 보건 복지부 장관이 둘째 아들 피에르 프랑스와 베일의 전 처이다.

상원의장에 의해 헌법위원회 구성원이 되었으며 2007년 10월 31일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된다.  그녀는 « 삶la vie »라는 책을 발간하여 15개국 번역되었으며 550 000권이 팔렸다.

여성해방과 여자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몬 베일은 2017년 6월 30일 파리 자택에서 숨을 거두고 60년간 함께 한 남편 앙투안 베일(2013작고)에게로 갔다. 베일부부는 프랑스를 위해서 최고 묘지인 팡데옹에 안장선언을  마크롱대통령으로 국장 당일 받았다.

아래는 임신중절 베일 법안 제출에 따른 연설내용 불어 내용이다.

Dans un discours emblématique d’une trentaine de minutes, elle défend le projet de loi 1297, un texte censé durer cinq ans, qui autorise l’interruption volontaire de grossesse avant la dixième semaine. La voix est hachée, le ton ferme. “Je voudrais vous faire partager une conviction de femmes – je m’excuse de le faire devant cette Assemblée constituée quasi-exclusivement d’hommes. Aucune femme ne recourt de gaieté de cœur à l’avortement. Il suffit d’écouter les femmes. C’est toujours un drame, cela restera toujours un drame”, lance Simone Veil, sous quelques applaudissements.

Nous ne pouvons plus fermer les yeux sur les trois cent mille avortements qui, chaque année, mutilent les femmes de ce pays, qui bafouent nos lois et qui humilient ou traumatisent celles qui y ont recours. Simone Veil le 26 novembre 1976

Après trois jours de débat, face à une assemblée à grande majorité masculine, Simone Veil était en train de laisser sa trace dans l’histoire de France. Avec cette loi : “nous pensons ainsi répondre aux désirs conscients ou inconscients de toutes les femmes qui se trouvent dans cette situation d’angoisse”, indiquait-elle.

Elle ajoutait : “actuellement, celles qui se trouvent dans cette situation de détresse, qui s’en préoccupe ? La loi les rejette non seulement dans l’opprobre, la honte et la solitude, mais aussi dans l’anonymat et l’angoisse des poursuites.”

AC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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