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국제연맹에서 첫 외교발언권 기록 발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제연맹에서 첫 외교발언권 기록 발굴

한불통신)  한반도를 중심으로 제국주의는 자국의 이익을 강탈하려고 전쟁을 불사하는 20세기 초,  대한제국과 민국은 외교적 수단을 강구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은 꺼지는 불꽃을 살리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만국평화회담 대회장 발언권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파급효과는 고종의 하야와 정미 7조약 및 특사들에겐 일본이 사형선고를 내린다.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은 1차세계대전 종전에 따른 조약으로 국제연맹을 탄생시킨다. 임시정부는 윌슨의 자결주의의 희망을 가지고 파리위원부를 설치했다. 한반도 전국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일어났다. 식민지국가에서 첫 대규모 독립운동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독립의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임시정부는 다시 1931년 만주사변의 한국동포들의 피해 호소와 독립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 국제연맹에 이승만 전권대사와 임정파리특파원이었던 서영해를 파견하여 외교무대에서 첫 발언권을 갇는다.

프랑스 국제연맹 외교 관보 1932-33년 임시정부 외교단이 일본 탄압에 저항하는 공식적인 기록을 남긴다. 주권이 없는 국가에게 국제연맹은 예외적인 발언권을 부여했다. 임시정부의 외교적 첫 성과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중국정부의 공동의 대응전략 및 중국어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서영해기자의 높은 수준의 행보가 중국대표단을 설득했다.

국제연맹 프랑스 관보

나아가 임시정부의 국제연맹 전권대사로 임명 받은 이승만이 가지고 있는 미국의 영향권과 ‘동지회’라는 조직이 제네바 활동을 유지케했다. 나아가 동지회 이름으로 국제연맹에 한국독립의 필요성을 요구한다.

만주사변은 간도지방의 한인 이민자들을 단합하게 만들었으며 일본 관동군과의 전투에서 승전을 올리는 독립전쟁이 있었다. 1932년 총사령관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 혁명군이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영릉가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파했다. 총사령관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 혁명군이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영릉가 전투와 사도하자 전투(四道河子戰鬪)와 동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파했다.

 

국제연맹에 제출된 한국측 입장을 담은 보고서에서는 일제가 국제사회에 규탄을 받을 식민정책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일본은 결국 1933년 상임이사국이었던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세계전쟁을 일으킨다.

 

임시정부가 국제외교에서 독립적 지위를 확보하는 노력과 해외에 나가있는 ‘동지회’와 서영해를 비롯한 파리재법한국민회의  동포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국제연맹에서 외교적 성과를 이루어냈다.

 

한불통신 – 오영교

paris50k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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